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방위군 사건 (문단 편집) === 병사 === 1950년 11월 15일 기준으로 전국 장정 대 등록자는 238만 9730명이었다. 이 중 경찰 / 형무관 / 군 소집 예정자 등을 제외한 68만 350명이 제2국민병이 되어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되었다. 이들 인원 중 당시 군이 발표한 사망자 수는 1234명이고 그외 상세불명의 행려 사망자가 있었다고 한다. 국민방위군 소집인원 중 교육대 수용인원은 29만 8142명이었다. 교육대는 경상도 일대에 51개, 제주도에 1개로 총 52개가 있었다.[* 국민방위군 자료가 사라져서 당시 국민방위군 소집자가 구두로 00교육대로 갔다는 식으로 증언한 자료 정도뿐이다.] 북한에게 초모되기 전에 청장년을 소개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월남한 청장년과 서울, 경기 지역의 피해가 막심하였다. 다만 충청, 전라도의 경우 소집되어 이동하는 중 국민방위군이 해산되어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. 실제로 국민방위군 68만 명 중 월남자 / 서울 / 경기 / 강원 / 인천 지역에서만 42만 명이 소집되었다. 소집된 제2국민병은 각 구청별로 소집된 장정을 담당 경찰관이 지정된 장소(서울은 [[창덕궁]] 비원 후정)로 인솔하고 인원점검 후 국민방위군 장교들이 200 ~ 300명식 중대 단위로 편성하여 도보로 교육대가 있는 경상도로 인솔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